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윌리엄 리히 (문단 편집) == 평가 ==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인 격동기에 미군의 제복군인들중 최고 자리에 있던 인물이지만, 그의 휘하에서 싸운 장성들이 워낙 역사에 길이 남을 거물들이라서 좀 묻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최고 지휘관만 따져도 당시 해군의 군령권과 군정권은 모두 해군참모총장 겸 함대총사령관인 [[어니스트 킹]]에게 있었고, 육군에서는 뛰어난 행정군인인 조지 마셜이 유럽과 태평양에 퍼져있는 맥아더, 브래들리, 아이젠하워같은 야전 지휘관을 잘 컨트롤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백지 상태에서 미 공군을 창조해낸 육군 항공대장 [[헨리 아놀드]], 유럽 연합군 사령관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태평양 연합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태평양 함대 사령관 [[체스터 니미츠]], 다혈질적인 맹장으로 유명한 [[조지 S. 패튼]], 석기시대 매니아로 유명한 [[커티스 르메이]] 등등 기라성같은 주요 야전 사령관들은 굳이 밀리터리 매니아가 아니더라도 이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인물들이다. 반면 윌리엄 리히는 당시 별 전공이 없었기 때문에, '''이름은 들어봤는데 누구더라...?''' 하는 공기 수준의 존재감에 그치는 편이다. 그러나 자세히 파고들면, 이 시기 미군의 전략 정책에서 리히의 존재감은 다른 어떤 장군들보다도 중요했다고 할 수 있다. 윌리엄 리히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연합군의 최종 군 통수권자이자 참전국인 미국 국민의 대표인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입이자 군사번역가이자 자문 역할이었다. 리히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말을 군사적 의미로 번역해서 합참에 올리고, 그 작전 수행에서 군의 폭주를 막는 안전핀 역할을 했다. 즉, 리히는 2차대전기 시기 미국의 [[문민통제]]를 지킨 인물이며, 군이 '''파시즘과의 항전, 민주주의 수호'''라는 전쟁의 명분을 잃지 않도록 한 인물이다. 추축국이 모두 문민통제는커녕 집권층이 군의 폭주를 부추겨 온갖 전쟁범죄를 양산해 명분을 잃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여기에 합참 최선임으로써 각군의 참모총장 사이를 조율하는 온화한 큰형 역할을 한 것도 리히다. 당시 합참의 참모총장 셋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특히 해군의 킹이 워낙 천상천하 유아독존에 좌충우돌한 성격이라 타군과 갈등을 많이 빚었는데, 예를 들어 육군의 마셜과는 작전 주안점을 태평양으로 둘 것인지 유럽으로 둘 것인지를 두고 시시때때로 싸웠고, 공군의 아놀드와는 각자 항공대를 운영하면서 발생하는 폭격 전략의 충돌을 논의하다가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이 시기 해군은 킹 문서에도 나와 있듯 미국 역사 상 가장 거대하고 강력한 군사 조직화되었고, 그런 거대한 군사 조직의 군정권과 군령권을 한 손에 거머쥔 이는 미국 역사 상 오직 킹 한명이었다. 때문에 킹의 말 한마디에 대전략이 들썩거릴 지경이었다.[* 2차 대전 말 미 해군 태평양 함대사령부는 일본의 항구를 봉쇄하기 위해 일본 본토 근해에 기뢰살포 작업을 진행하고자 육군항공대의 폭격기들을 항구 봉쇄로 돌린 적이 있었다. 그러자 당시 일본 각지를 공습하고 있던 폭격기 부대의 사령관 커티스 르메이 장군은 당연히 도시에 대한 폭격을 더 해야 하지, 항구 봉쇄해서 뭐에 써먹느냐고 툴툴대다가 상관인 아놀드 장군에게 기뢰살포 작업에서 기존 공습작전으로 옮겨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아놀드 장군이 킹 제독과 담판을 지으려 했으나, 킹 제독은 '''"그럼 해군은 빠질 테니까 육군끼리 잘 해 보시든지."'''라며 배째라 식으로 나갔고 아놀드 장군을 아무 말도 못하게 만들어버렸다. 어찌됐든 기뢰 살포 작전은 매우 효과적이었고, 이후 태평양 함대사령관 체스터 니미츠 제독은 르메이 장군에게 협조해 줘서 감사하다는 서신을 보냈다.] 심지어 필리핀에 있는 더글러스 맥아더는 속된 말로 루스벨트하고만 놀겠다고 킹과 마셜은 안중에도 없이 날뛰면서[* 맥아더는 마셜과 동기에, 진급은 마셜보다 훨씬 빨랐다. 킹은 사관학교 졸업은 맥아더보다 빨랐지만, 당시 미 해군은 사관학교 졸업 후 준사관 내지 소위 후보생으로 복무한 뒤 정식 임관하는 체계여서 소위 임관은 맥아더보다 느렸다. 킹의 성격 상 맥아더 같은 스타일과 화합하는 것도 불가능했고. 이런 맥아더와 그나마 대화라도 할 수 있었던 건, 아예 '''19세기 말''' 졸업에 소위 임관도 2년 빠른 선배 리히뿐이었다.] 자기 정치를 하는 통제 불능의 인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일본같은 극한상황]]이 발생하지 않고 연합군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점에서 이 양반도 뛰어난 리더이자 상당한 능력자였음을 알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